1. 안녕하세요 교수님. 이제 막 입학한 학부생들도 이 뉴스레터를 보게 될 것 같아 교수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과 교수님 연구실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저는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에서 방사선 재료 및 나노역학 연구실을 지도하고 있는 장동찬이라고 합니다. 저는 학사학위, 박사학위, 및 박사 후 과정을 모두 재료공학 분야에서 마쳤으며, 따라서 제 연구의 뿌리는 재료공학, 그중에서도 특히 나노재료의 기계적 물성 분석 부분에 놓여 있습니다. 이후, 방사선 환경이 재료의 물성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 관심이 생기며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접점이 생기는 방향으로 연구의 폭을 확장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하여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에서 연구와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방사선 재료 및 나노역학 연구실에는 원자력 및 양자공학, 재료공학, 기계공학, 나노과학, 물리학, 화학, 및 바이오 공학의 일부 혹은 모두가 교차하는 접점에서 기존의 과학적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현상들을 찾아내고,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확립하여,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있는 다양한 공학적 지식을 얻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특히 방사선과 같은 높은 에너지의 흐름이 존재하는 환경에서 자연을 구성하는 여러 물질들은 다양한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 반응들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반응들은 때로는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때로는 인간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당 물질들의 특성 변화를 일으킵니다. 저희 연구실은 방사선을 포함한 극한 환경에 놓인 유/무기 재료들과 생물학적 시편들이 보이는 변화의 근본적 원인을 찾아내어, 이롭지 않은 변화는 최대한 억제하고, 이로운 변화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큰 방향 아래에서 현재 저희 연구실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높은 방사선 저항성을 갖는 구조재료 개발, 2) 생물학적 시스템의 방사선 영향 분석, 3) 구조재료 응용을 위한 나노역학, 4) 기능성 재료 응용을 위한 나노역학. 첫 번째 주제는, 원자력 발전소나 핵융합로와 같은 높은 방사선 환경에서 사용되는 금속 및 세라믹 구조재료들의 물성을 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재료공학 기반으로 찾아내는 연구입니다. 두 번째는, 방사선 환경에서 인체 조직이나 인체를 구성하는 물질들의 반응을 화학적, 생물학적, 및 나노과학적으로 분석하여 방사선의 인체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입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주제는 모두 나노재료들이 보여주는 특이한 물성들에 초점을 맞춘 연구입니다. 세 번째 주제는 나노재료의 독특한 기계적 물성을 높은 하중을 지탱하는 용도로 주로 쓰이는 구조재료에 응용하기 위한 기계공학 및 재료공학 기반의 연구이며, 네 번째 주제는 나노재료의 독특한 기계적 물성을 기능성 나노재료에 접목하여 재료의 다기능화(multi-functionality)를 이끌어내는 물리학 및 나노과학 기반의 연구입니다. 지금 설명드린 저희 연구실의 연구주제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저희 연구실 홈페이지(rnl.kaist.ac.kr)에 접속해 보시거나, 저에게 이메일을 보내시면 됩니다.
2. 교수님께서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또 왜 이 분야를 택하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인생의 큰 목표를 미리 설정해 놓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노력하는 방식으로 살아온 것 같지는 않습니다. 대신, 매 순간 어떤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을 때 원하지 않는 것을 억지로 선택하거나 선택지에 없는 것을 무리해서 찾기보다는, 놓인 것들 중에서 가장 재미있어 보이는 것들을 순차적으로 선택하다 보니, 현재에 도달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료공학을 연구하다 원자력 및 양자공학 분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무척 단순합니다. 재료공학 분야에서도 X-선이나 입자빔을 사용하여 재료를 분석하고 가공하는 것은 거의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작업입니다. 원자력 및 양자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학과의 학문 분야는 공학 및 이학 여러 분야에서 이미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에서 연구를 한다는 것이 기존에 재료공학과에서 해오던 연구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을 한다는 인식이 거의 없었습니다. 즉, 저는 예전에 재료공학을 하고 있었을 때에도 원자력 및 양자공학적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고, 지금도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재료공학의 접점에서 같은 연구를 꾸준히 해오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현재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에는 제각기 다양한 꿈을 갖고 온 학생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을 하며 보다 구체적인 미래 등 다시 진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교수님께서도 이처럼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으셨는지, 있으셨다면 어떠한 진로를 꿈꾸셨고 어떻게 지금과 같은 교수의 길을 걷게 되셨나요?
앞선 질문과 거의 유사하게 답변을 하게 될 것 같네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진로에 관련된 선택을 해야 할 때 늘 염두에 두었던 것은 “무엇이 되고 싶다” 라기보다는 “무엇을 하고 싶다”라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 일을 남은 인생 동안 계속하게 된다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라는 것이 제가 선택을 해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새로운 지식을 찾아내는 일을 재미있게 느꼈었고, 그래서 매 선택의 순간에 자유로운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들을 골라 왔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졸업도 조금 늦었었고, 박사 후 과정도 오래 밟았고, 경제적으로도 그다지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아직까지는 제가 선택한 길들에 대해서 아무런 후회 없이 재미있게 현재의 일들을 즐기고 있습니다.
각 학생분들께서 현재 가지고 있는 진로에 대한 고민들과 선택해야 할 많은 일들이 지금은 매우 중차대하고 돌이킬 수 없는 인생의 갈림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하지만, 학생분들은 아직 너무나도 긴 시간이 인생에 남아있고, 아마 시간이 흐른 후 돌이켜 생각해 본다면, 현재의 여러분의 고민들이 사실은 그렇게까지 무거운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해야 할 지금의 결정들이 여러분의 남은 인생을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결정짓지는 않을 것입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고민에 너무 매몰되지 마시고 현재 시점에서 여러분이 가장 후회하지 않을, 혹은 가장 하고 싶은 결정을 다른 사람의 눈치 보지 말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4.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20세기 이후 현대 과학은 학문의 세분화와 전문화가 심화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그 결과 각 학문 분야 사이의 학술적 교류가 어려워지고 지식이 단절되는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최근에는 서로 다른 학제 간 융합연구를 크게 장려하는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저희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는 이런 학제 간 융합 연구가 학문분야 자체에 내재적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원자력 에너지 시스템이라는 하나의 목적 아래에서 물리/화학/수학/기계공학/화학공학/재료공학/인지과학 등 서로 다른 뿌리를 갖는 학문 분야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곳이 원자력 및 양자공학 분야입니다. 따라서,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에서 수학한 학생들은 하나의 학술적 대상을 바라보는 여러 가지의 다른 시각들을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으며, 이렇게 얻은 폭넓은 시각은 졸업 이후 각 학생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연구 및 개발 업무에 종사할 때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비 학술적인 관점에서 우리 학과의 장점을 꼽아 본다면, 작은 학과 규모에 기인한 높은 교수대 학생 비율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학부생 입장에서). 저는 학문은 한 명의 고립된 연구자가 혼자의 힘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연구자들이 서로 긴밀히 소통하면서 집단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연구자들 사이의 인적 교류는 학문 발전의 무척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며,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의 높은 교수/학생 비율은 학부생들이 선배 학생들이나 교수님들과 친밀한 학술적 교류를 일찍부터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의 학부생들은 학술적 의사소통을 다른 학과의 학생들보다 이른 시기에 접할 수 있으며, 이는 학생들이 졸업 후 훌륭한 연구자가 될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5. 학생들을 가르치거나, 연구를 하시면서 가장 보람 있으셨던 적은 언제이신가요?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미 확립된 과학적 지식들을 수동적으로 학습하는 방식으로 공부를 주로 해 왔습니다. 하지만, 대학원 입학 이후의 연구 활동은 주어진 지식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가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즉, 수동적 지식 습득에서 능동적 지식 창출로 연구 및 공부에 대한 태도가 극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죠. 당연히 대학원 입학 초기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러한 변화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 전환 과정에서 지도교수로서 저의 역할은 각 학생들이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조언해 주고 길을 안내해 주는 것입니다. 제가 학생들과 함께 연구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초기에는 연구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좌충우돌하던 학생들이 연차가 쌓임에 따라 조금씩 방향을 잡고 자신들만의 생각을 확립하기 시작하다가 마침내 제가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아도 각자가 혼자서 자신의 연구를 진행하고 확립해 나가는 모습을 볼 때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 비로소 한 명의 독립된 연구자가 탄생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6. 방사선 재료 및 나노역학 연구실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 미래에 이 분야가 갖는 비전에 관해서 설명해주시고, 이러한 분야에 공헌하기 위해 갖춰야 할 덕목이나 공부해야 할 전공 지식 등을 알려주시면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원하는 답변이 아닐 수는 있는데, 저는 저희 방사선 재료 및 나노역학 연구실이 집중하고 있는 분야만이 보여줄 수 있는 특별한 비전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저는 방사선 재료 및 나노역학 연구실에서 공부한 학생들 하나하나가 모두 자기만의 비전을 만들고 자기만의 방향으로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학생 때 처음 공학 공부를 하게 되면, 각 학문분야가 매우 차별화되어 있고, 내가 공부하지 않은 분야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공부를 조금 더 하게 되면, 겉보기에는 매우 달라 보이는 학문 분야들 사이에 의외로 매우 많은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저희 연구실의 연구 분야에서 예를 하나 들면, 큰 건축물의 뼈대가 되는 트러스 구조와, 우리 몸의 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세포외기질(extracellular matrix)을 이루는 물질이 외부 하중에 대하여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반응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분야를 관통하는 일반 지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새로운 비전을 개척하기 위해서 우리 학생들이 어떤 태도를 가지고 공부해야 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특정 분야의 특정 현상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겉보기에는 달라 보이는 여러 현상들을 관통하는 보편 법칙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곳에서 새로운 비전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공부를 하실 때 주어진 내용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가장 깊은 곳에 놓여있는 보편성을 끄집어낼 수 있는 통찰력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학부 때 배우는 기초과목을 착실히 공부해 놓는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소망으로는, 방사선 재료 및 나노역학 연구실에서 공부한 모든 학생이 각자의 비전을 가지고 사회 여러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기여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지금까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를 지원하려는 학생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과 내면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이 매우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여러 학생분들도 경험해서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편견을 깨고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많은 좋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