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뉴스레터 발췌)
1. 오랜 시간 원자력 계에 몸담고 계시다가 은퇴를 목전에 앞두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아쉬웠던 일이라 던지, 기억에 남았던 일과 같은 소감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제가 원자력이라는 학문을 공부하게 된 동기부터 말씀드리자면 중학교 때 어느 과학잡지에서 핵물리에 관련된 기사를 읽으면서 ‘아 나도 막연하게나마 핵물리 분야를 공부해서 원자력과 관련된 일을 하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때부터 생각한 이 막연한 꿈이 현실이 돼서 지금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직 은퇴를 눈앞에 둔다는 게 참으로 의미도 있고 한편으로는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 교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이탈리아와 16강전 마지막 경기와 제 과목의 시험이랑 겹쳤던 일이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 과목의 시험은 오픈북에 시험시간 무제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때 시험을 보는 중간에 학생들과 함께 노천극장에 가서 우리나라가 승리하는 그 경기를 봤습니다. 공교롭게도 학생들은 다시 시험을 봐야하니까, 다시 강의실에서 시험을 봤던 그런 기억이 나네요.
2. 최근 차세대 산업동력으로 수소경제가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오랜 시간 동안 원자력/수소 시스템에 대해서 연구하셨는데 이러한 수소경제에 원자력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 2000년도에 MIT 교환교수로 MIT에 갔었는데 그 때 저를 초청한 교수님께서 그 당시 MIT에서 진행하고 있는 수소 생산 가스냉각원자로 과제에 참여를 제안 받았습니다. 사실 그 때는 국내에서도 가압경수로에 집중할 때이기도 하고 저도 가스냉각원자로를 잘 모를 때였어요. 그런데 돈을 더 주겠다고 하니까 (하하) 제가 그 제안을 받아드렸죠. 그런데 이 과제를 참여하고 공부를 하다 보니, 여기에 우리 학생들의 미래가 달려있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국에 돌아와서 수소 생산 원자력에 대한 나름의 캠페인을 좀 했죠. 근데 마침 시대와 잘 맞게도 그 당시 미국의 부시 정부가 수소경제를 주창했고, 곧이어 우리 정부도 수소경제를 국가의 중요한 성장동력으로 선정했습니다.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수소를 만든다는 것이 지금도 그렇고 그 때 당시도 그렇고 원자력 수소시스템의 큰 마일스톤이었어요. 하지만 그 시기에 국내에서 저를 포함해서 가스원자로를 해본 사람이 거의 없었죠. 그래서 이 연구를 크게 만들기 위해서 제가 아무런 연구실적 없이, 심지어 논문도 없었죠. 국가지정연구실 신청을 했는데, 그게 선정이 됐어요. 어떻게 보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아마 그 당시에 이 연구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고 선정해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연구실이 이름이 원자력 시스템 연구실이었는데 지정되고 난 후에는 수소라는 이름이 추가적으로 붙게 되죠. 그 때 당시 학생들은 대학교 1학년 기초 화학부터 시작해서 정말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어요. 그래서 한 2~3년간은 실적이 없다가 그 후부터는 실적이 나오면서 지금에서는 어느정도 수소생산과 기법 연구에는 세계적으로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화석연료를 쓰지 않고 수소를 생산하는 원자력 수소 시스템이 미래에는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길이 쉽지는 않아서 앞으로 미래세대가 열심히 연구해서 전 세계에 큰 기여를 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3. 또한 교수님께서는 원자력 안전해석에서도 많은 연구를 수행하셨고 지대한 공한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신뢰할 수 있는 원자력 혹은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원자력 시스템이 되기 위해서는 원자력 산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을까요?
- 제가 수소 시스템을 연구하다가 새로이 원자력 안전해석 및 중대사고 연구를 시작한 시기가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부터 입니다. 그 사고 이후로 제가 느낀 것이 원자력 중대사고 연구가 현재 우리나라에 더 긴급한 연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요새는 원자력 안전이라는 말보다 원자력 안심이라는 말을 더 많이 씁니다. 전문가들이 아무리 공학적으로 안전하다고 해도 국민들이 안심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수준까지 가야한다는 것이 제 기본 생각입니다. 그런데 대형원전은 그런 수준까지 가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중소형 원전에 대한 연구가 새로운 큰 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중소형 원전 연구를 통해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간다면 대형 원전에 대한 안심으로 까지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전문가들은 현재 원자력 시스템이 안전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안주하지 말고 더 나아가 우리가 알고있는 것들을 국민들이 알기 쉽게 이해하고 설득시킬 수 있는 방법 자체를 공학적인 R&D를 통해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안전에만 매몰되어 경제성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원자력이라는 시스템의 경쟁력 자체를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공학자들이 그 사이에서 잘 균형을 잡아야합니다.
4. 앞으로 우리나라가 굴지의 원자력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우리 학생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공부를 해야하는 것이 좋을까요? 교수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당부하고 싶으신 말이나 조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제가 요즘 역사공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역사공부를 하면서 패권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지켜봤습니다. 세계적인 패권국가들의 순서를 나열해보면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 이런 흐름으로 왔다고 합니다. 제가 읽고 있는 책에서는 패권국가의 성장주기를 인간의 성장주기와 비교하면서 분석했습니다. 어떤 국가가 어느정도 성장을 해서 패권을 쥐게 되면 그 국가는 필연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국가가 성장한 특정 방법이 있다면 그 국가는 계속적으로 그 방법을 취하게 되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반드시 후발주자는 앞서 있는 패권국가를 쫓아가기 위해 좀 더 공격적인 방법을 찾아내어 결국 선발의 국가들을 따라 잡는 다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결국 패권국가들의 문제는 지금까지의 성공에 취해있고, 지금까지의 패턴을 유지하려는 것에 반해 후발주자들은 그것을 따라 잡기 위해 청년의 시기와 같이 다이나믹한 방법을 강구하고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에게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초창기 우리나라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 국내 원자력 연구와 산업의 기반을 닦았던 우리의 선배 분들의 열매를 우리가 따먹고 있는데 거기에 우리가 너무 안주하지 말고 청년시기의 다이나믹스를 계속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런 다이나믹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지금의 성취에 안주하지 말고 꾸준한 고민과 계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