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5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월성 1호기 가동중단 근거로 내세웠던 경제성 분석 자료의 오류에 대해 감사원 감사 청구를 준비 중입니다. 내년에는 국회의원 총선거를 맞아 후보자들에게 원전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도록 요구하는 활동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핵 선언’ 2주년(6월 19일) 및 월성 1호기 원전 조기폐쇄 결정(6월 15일) 1년에 즈음해 만난 성풍현(64)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과학이 아닌 ‘이념’이 지배하는 에너지 정책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었다.
지난 17일 성 교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차를 몰고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로 가던 중, 북대전 요금소를 통과하자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 앞 도로에는 원자력 연구자들과 반핵 단체가 각각 설치한 플래카드가 줄줄이 걸려 있었다. 흰 바탕에 ‘미세먼지 배출 없는 깨끗한 원자력’ 같은 글씨만 빼곡히 적힌 연구자들의 플래카드와 컬러풀한 반핵 단체 플래카드가 뚜렷이 대비되고 있었다.
―과학 도시를 표방하는 대전인데, ‘저희는 과학자입니다’라는 문구까지 적어넣고 호소하는데도 원자력 연구자들의 목소리는 여기서도 별로 통하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원자력연구원에서 연구용으로 사용후 핵연료를 몇 개 갖고 온 게 있는데, 그걸 갖고 (환경단체와 일부 시민이) 문제 삼고 있다. 사실 탈원전이 전문가나 국민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고 신중하게 결정한 게 아니지 않나. 정부에서 성급하게 결정해 놓고, 그걸 정당화하려고 원자력이 매우 나쁘게 보이도록 선전해 왔으니까 환경단체들의 주장이 먹히는 것 같다.”
―6월 19일은 문재인 대통령이 ‘탈핵 시대’를 선언했던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2주년이다. 탈원전 2년 동안 벌어진 문제점을 짚어본다면.
“일단 당시 문 대통령이 ‘탈핵 시대’를 선언했을 때, 그 선언문부터 틀린 내용이 많았다. 대표적인 게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다. 원전 사고로 1368명이 사망했다든지, 방사능 영향으로 인한 사망자나 암환자 수가 파악조차 불가능했다는 것은 중대한 사실 왜곡이다. 1368명은 사고 이후 6년 동안 대피 시설에서 이재민 생활을 하다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의 숫자다. 또 그중 3분의 2는 80세 이상 노약자였다. 방사선 피폭으로 사망한 사람은 없었다. 용어도 계속 바뀌었다. 2017년엔 ‘탈핵’이었는데, 이게 ‘비핵화’랑 비슷한 느낌을 주니까 그랬는지 ‘탈원전’으로 바꾸더니, 다시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변경했다. 다 똑같은 원전 폐지인데, 국민 저항을 가장 적게 받기 위해 미화하는 쪽으로 단어를 바꾼 것이다.”
성 교수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자료의 ‘왜곡’이나 비판 목소리에 대한 철저한 무시, 비전문가 임명 등을 통해 다각도로 원자력 고사(枯死)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정부는 탈원전의 방법으로 ‘신규 원전 건설 불허’와 ‘추가 운영허가 발급 불허’만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그동안 전방위적으로 원자력을 고사시키려 시도해 왔다. 첫 번째가 멀쩡하게 잘 운전되고 있던 월성 1호기를 경제성이 없다고 조기 폐쇄한 것이다. 이때 쓰인 경제성 분석 자료는 한마디로 잘못된 자료였다. 원전 이용률은 보통 80∼90%이고, 월성 원전도 평상시에 90% 정도였는데 이걸 60%로 잡았다. 한수원에서 원자력 발전으로 생산해 한국전력에 파는 전기의 값을 54원으로 계산했는데, 실제로는 60원 정도다. 원가보다도 낮게 팔고 있는 것처럼 계산해서 경제성이 없다고 한 거다. 한수원이 ‘윗선’의 지시를 따랐거나, 과잉 충성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현재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추구하는 교수협의회(에교협)’에서 감사원 감사청구를 준비 중이다. 무엇보다 원자력 전문가가 일해야 하는 곳에 비전문가인 환경단체 사람들을 앉혔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는 지금 원자력 전문가가 없다. 김혜정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은 환경운동연합 출신이다. 이런 비합리적 상황을 지적하고 진정한 에너지 정책 합리화를 이루기 위해 지난해 3월 에교협이 만들어졌다. 당시 57개 대학에서 교수 210명이 참가했는데, 지금은 61개 대학 225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에교협에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일부 야당 의원도 함께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우리 주장을 못 들은 척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우리나라 원전 기술 사장 및 인력 유출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 원전 핵심 기술이 미국, 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 유출됐다는 의혹에 대해 국가정보원이 수사 중이라는데.
“졸속 탈원전 정책을 계속 시행하는 분위기하에서는 원전 종사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자기 살길을 찾아 떠나는 과정에서 기술 유출 등이 앞으로도 계속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내가 보기에는 조만간 정부가 정책 방향을 선회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다. 내년에 총선이 있는데, 국회의원 후보들에게 가서 물어볼 수도 있지 않나. 탈원전을 지지한다고 대답하면 그 후보가 표를 얻는 데 도움이 될까. 총선 후보들을 찾아가서 탈원전에 대해 입장을 공표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전문가로서 객관적으로 평가할 때 우리나라의 원전 기술 수준은 실제로 어느 정도인가.
“원전 건설 기술은 세계 ‘톱(Top)’이다. 운영 기술도 마찬가지다. 설계 기술은 원래 기본 기술이 모두 미국에서 나온 거라서, 독자적 기술 개발에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APR1400 원전이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표준설계인증인 NRCDC를 받지 않았나. 프랑스, 일본도 받지 못한 인증이다. 검토 결과 안전성이 충분하니, 한국 원전을 미국에 팔아도 되겠다고 승인해준 것이다. 2017년 10월에는 APR1400의 유럽 수출형 모델인 EU―APR가 유럽사업자요건(EUR) 인증도 통과했다. 그렇다면 설계 기술도 최고 수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자꾸 원전을 없애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원전산업 위기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가.
“최근 한국원자력학회 창립 50주년 기념 원로 포럼에서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원전 주기기 공급사에서 과장급 이상 직원 2300여 명을 대상으로 2달간 유급휴직을 시행했다. 90여 개 주요 협력업체는 탈원전 정책 이후 평균 40%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원전 건설 시공사들의 경우 인력이 2년 사이 22.5% 감소했다. 국내 3대 원전 공기업(한수원·한국전력기술·한전KPS)에서는 자발적 퇴직자가 2015∼2016년 170명에서 2017∼2018년 264명으로 급증했다.”
―탈원전 선언 이후 원자력공학과 입학 지원자가 줄었다는 보도가 종종 있었는데, 현장에서 직접 겪은 실태는 어떤가.
“카이스트에서는 입학할 때 학과를 정하지 않고 무조건 700여 명을 뽑는다. 2학년으로 올라갈 때 각자 지망한 학과로 가게 된다. 보통 20∼25명이 우리 학과로 왔는데 지난해 5명, 올해는 4명으로 줄었다. 수업이 성립하려면 최소 5명이 수강신청을 해야 한다. 다행히 다른 과에서 신청한 학생들이 있어서, 가까스로 원자력 과목들 폐강은 면했다. 울산과학기술원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들었다. 서울대에서는 신입생 30명 중 6명이 입학 포기, 자퇴했다고 한다. 경희대에서도 전과(轉科) 희망자가 많았다더라.”
―정부는 원전 수출은 계속하겠다고 했지만, 수출에도 차질이 생기는 것 같다.
“당연하다. 우리 아이에게는 나쁘다고 안 먹이는 음식을 다른 집 아이에게는 괜찮다고 팔겠다는 것과 똑같다. 상대방 국가에 대한 기만이고 모욕이다. 탈원전 정책을 지속하면서 새로 원전 수출계약을 따내기는 쉽지 않다고 봐야 한다. 지금 개발도상국 중에는 원전을 하려는 곳이 많다. 경제 발전을 하려면 전기가 필요한데,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대량의 전기를 만들 수 있는 게 원자력뿐이다. 2000년대에 카이스트에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나라의 학교에서 찾아와서 ‘강의 좀 해달라’고 부탁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강의도 해줬고, 나는 UAE에서 칼리파대 원자력공학 대학원 과정 설립을 돕기 위해 1년 살고 오기까지 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나라가 원전을 안 한다고 하니, 이 사람들도 황당해하는 상황이다.”
―올 1분기 한국전력 적자가 6299억 원으로, 1분기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였다. 정부는 ‘전기료 인상은 없다’고 하는데, 한전이 이런 상태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전이 대규모 적자를 보는 것은 전기료를 올리지 못하는 가운데 값싼 원자력 전기를 적게 쓰고, 비싼 LNG 전기를 많이 썼기 때문에 생긴 당연한 결과다. 전기요금도 결국은 올릴 것 같다. 다만 내년 총선 전에는 안 올릴 것 같다. 선심 쓰느라 여름철 전기료 누진제까지 완화해서 한전만 죽어난다. 예전처럼 원자력 발전을 충분히 하면 1년에 7조 원씩 영업이익을 내던 회사다. 더 돈을 못 벌게 하면 주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3차 에너지기본계획(에기본)을 확정하면서 탈원전을 재차 공식화했다.
“이 일로 우리나라는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볼 것이다. 불과 몇 년밖에 유지되지 않을 정부가 백년대계 에너지 정책을 국민이나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적법하지도 않게 성급하게 시행해도 되는지 큰 걱정이다. 적법하지 않다고 말한 것은 우리나라에 엄연히 원자력진흥법이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진흥법에 의하면 원자력과 관련된 중요한 사항은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돼 있는데, 다 무시하고 대통령 발언에 따라 하고 있다.”
―경제단체뿐 아니라 원자력진흥위도 ‘패싱’하는 모양이다.
“참고로 내가 2016년 11월에 3년 임기의 원자력진흥위원이 됐다. 원자력진흥위는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기획재정부·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4개 부처 장관이 당연직 위원이 되는 중요한 조직이다. 그런데 지난 2년 반 동안 한 번도 회의가 열린 적이 없다. 5개월 있으면 내 임기가 끝난다. 그래서 전화도 한 번 했다. 위원 뽑아놓고 뭐하는 거냐고. 과기정통부 담당자가 전화를 받아 ‘한번 모여야죠. 곧 연락할 겁니다’라고 대답한 게 벌써 한두 달 전이다. 의도적으로 회의를 안 여는 것 같다.”
―3차 에기본에 의하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40년까지 30∼35%로 올릴 계획이다. 어떻게 평가하나.
“부지 확보 등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대충만 계산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현재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3020(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20% 달성)’만 해도, 추가로 짓겠다는 발전설비 용량이 약 50GW다. 풍력발전기 하나가 5㎿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하니, 풍력발전기 1만 개가량을 지어야 하는 용량이다. 그런데 5㎿급 풍력 발전용 터빈 하나 만드는 데 쓰는 부지가 대략 1㎢다. 풍력 발전으로 3020을 달성하려면 1만㎢ 부지가 필요하다. 경기도 면적이다. 태양광 발전으로 한다면 서울 면적의 3배 정도 부지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 이런 부지가 있지도 않을 것이다.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로 추산해도 이런데, 30∼35%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면 맞는다. 억지로 부지를 확보해 설비를 짓는다 해도 재정적 부담이 어마어마하게 커서 경제적으로 파탄이 날 거다. 원전 하나와 같은 양의 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태양광 발전소는 6개를 지어야 한다. 게다가 태양광 발전은 하루에 한 4시간 돌리면 끝이다. 4시간 동안 열심히 발전해서 에너지를 배터리에 저장해두면 문제가 해결될까? 우리나라에 있는 자동차 2000만 대에 달린 배터리를 전부 모아서 전기를 꽉 채워놓더라도, 평균 전기 소비량으로 계산해 보면 15분 만에 다 소진된다고 한다. 비유하자면 재생에너지는 자전거로, 원자력은 기차로 물자를 수송하는 것과 같다. 대량 물자 수송은 기차로 하고, 자전거는 보조 수단으로 이용해야 한다. 즉 원자력으로 주 발전원을 삼고 재생에너지는 보조 발전원으로 해야 한다.”
―정부가 3차 에기본에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만 내놓고, 원전 및 석탄 발전 비중 목표치는 제시하지도 않아 논란이 일었다.
“한마디로 3차 에기본은 제대로 준비되지 못한 졸속 계획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어느 국회의원 얘기가 ‘스터디를 제대로 안 하고 독일 것을 그냥 베낀 것 같다’고 하더라. 독일 탈원전도 이미 거의 실패했다.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어 놓고서도 석탄을 줄이지 못해서, 온실가스가 유럽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수준이다. 전기료도 비싸다. 실패한 독일 에너지정책을 따라가면서, ‘독일은 (탈원전)하는데 왜 우리는 못하느냐’고 주장하는 게 아주 큰 문제다.”
성 교수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더니 국가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표시해주는 웹사이트에 접속해 기자에게 보여줬다.
“이게 ‘일렉트리시티 맵(Electricity Map)’이란 사이트인데, 여기 보면 체코가 이산화탄소 배출이 제일 많은 것 같고, 독일도 상당히 많은 편이고, 프랑스는 괜찮다. 프랑스가 원자력 발전을 많이 하는 나라다. 우리나라도 이산화탄소가 매우 많이 나오는 걸로 표시된다.”
성 교수의 자세한 설명을 듣다 보니 자연히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여전히 탈원전 찬성 여론이 높은 수준인 게 현실이다.
―지난달 한 여론조사에서 ‘점진적으로 원전을 축소하고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답변이 56.4%로 나왔다. ‘원전 축소가 오히려 환경 문제를 악화시키고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므로 탈원전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는 32.4%에 그쳤다. 이런 조사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 조사 결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원자력학회에서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4차례에 걸쳐서 여론조사를 했다. 조사업체가 달랐는데도 첫 3차례 조사에서 일관성 있게 원전 확대 또는 유지가 약 70%, 원전 축소 또는 폐지가 약 30%로 나왔다. 4번째 조사 결과는 미발표 상태인데, 원전 찬성이 이전보다도 높게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설문의 공정성이 아주 중요하다. 정부와 학회가 같이 여론조사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 제안한 적이 있는데,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에교협 출범 당시 창립 취지문에서 “원전 안전에 대한 사실 왜곡으로 위험성이 과장돼 과도한 공포와 불안이 형성됐다”고 밝힌 바 있는데. 원전의 안전성에 대해 설명해 달라.
“2012년 포브스에서 발전원별로 발전량 1조kwh당 사망자 수를 발표한 바 있다. 1조kwh면 우리나라 전체가 2년 정도 쓸 수 있는 전기에 해당한다. 이 정도 전기를 생산할 때 발생한 사망자가 석탄 발전은 10만 명, 석유 3만6000명, 천연가스 4000명, 수력 1400명, 태양광 440명, 풍력 150명 등이었다. 원자력이 90명으로 제일 적었다. 원자력 발전이 가장 안전하게 전기를 생산하는 방법이란 통계가 나와 있는 것이다. 사용후 핵연료나 방사선에 관해 일반인들이 지나친 공포를 갖고 있다.”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같은 참사가 발생했던 것은 사실이다.
“원전이라고 다 같은 원전이 아니다. 자동차도 모델에 따라 안전성이나 경제성이 다르지 않나. 체르노빌 원전은 방사능 유출을 막는 컨테인먼트(Containment) 빌딩도 없는 원전이었다. 원자로에서 온도가 올라가면 물 밀도가 떨어져서 반응이 저절로 적어지고, 그 결과 출력이 떨어져야 한다. 이게 고유안전성이라는 건데, 체르노빌 원전은 물을 쓰지 않고 흑연을 감속재로 써서 고유안전성도 갖추지 못했다. 후쿠시마 원전은 컨테인먼트 빌딩이 작고, 비상발전기가 침수되기 좋은 낮은 위치에 있었다. 또 여러 번의 사내외 전문가 경고에도 불구하고 쓰나미 방벽을 충분히 높이 쌓지 않았다. 우리나라 원전은 컨테인먼트 빌딩도 튼튼하고 다른 안전장치도 다 잘돼 있다.”
―최근 한빛 1호기 수동정지 사건은 어떻게 봐야 하나.
“미국 웨스팅하우스사 원전인데. 파워가 올라갈 때 자동으로 정지시키는 기능이 5가지나 있다. 테스트하던 사람이 그대로 내버려뒀더라도 발전소가 자동으로 정지돼 문제가 없었을 거다. 그것 때문에 체르노빌 같은 사고가 생길 수 있었다느니 주장하는 건 잘못이다. 정확한 조사 결과가 나와봐야겠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으로는 제어봉 조작 등 작업할 때는 노심, 열출력 같은 걸 잘 아는 사람이 반드시 옆에 있어야 하는데, 기기 이상 여부만 체크하는 계측제어 쪽 사람이 와서 잘 모르고 건드린 것 같다. 물론 원자력 안전문화 결여 등 측면에서는 분명 문제다. 하지만 발전소 자체의 결함은 아니다.”
―지난 3일 에교협이 성명을 통해 월성 1호기 재가동을 촉구했다. 신한울 3호기와 4호기는 지난해 정부가 신규 원전 건설 취소 결정을 내릴 때 제외됐는데도 진척이 없다고 하는데, 원전 재가동, 건설 재개가 시급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
“전기료 인상, 에너지 안보 위협, 기후변화 악영향, 국내 원전 산업 붕괴, 기존 가동 원전의 안전성 위협 등 탈원전의 ‘5대 폐해’가 발생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전력망이 연결돼 있지 않다. 전기가 모자라면 정전되는 수밖에 없다. 그게 에너지 안보 위협이다. 러시아와 전력망, 가스관을 연결하는 정책을 추진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더 위험하다. 북한을 거쳐야 하는데, 전력망을 설치하면 북한이 중간에서 빼먹거나 유사시 전력망을 끊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구상이 나오는 것은 과학 정책까지 이념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인 것 같다. 가동 원전 안전성 위협은 탈원전으로 원자력 전문가들이 점점 줄어들고, 원자력 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기가 매우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한빛 1호기 사고에도 이런 영향이 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에 다녀온 미국원자력학회 총회의 주제는 무엇이었나. 우리나라가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었다면 소개해 달라.
“지난 9∼13일(현지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미국원자력학회 연차총회에 참석하고 왔다. 이번 학회 주제가 ‘원자력의 가치(Value of Nuclear)’였다. 미국 학회 사람들이 끊임없이 주장하는 게 ‘원자력이야말로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량 에너지원’이란 것이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가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앞서 5월 12∼15일 프랑스 니스에서 원전 선진화 국제회의(ICAPP·아이캡)라는 학회가 열렸는데, 38개국 원자력학회와 4개 국제단체 대표가 모여 선언문을 채택했다. 원자력 발전이 이산화탄소 저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미국에서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인식이 어떤지, 최초 허가받은 수명이 다한 원전을 어떻게 처리하는지도 궁금하다.
“미국은 원전 98개를 가동 중인데, 87기가 60년 이상의 운영허가를 받았다. 80년 동안 운전하기 위해 6기가 연장 갱신 신청을 했다. 2기는 새로 짓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1차 운영허가 기간 40년이 되면 다 문 닫겠다는 것 아닌가. 미국은 매우 합리적이다. 운영허가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한국에 왔을 때 ‘당신네 나라에서는 원전을 100년도 쓰겠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경제성과 안전성만 갖췄다면 문제될 게 없다고 하더라. 정책에 있어 미국은 이성을 내세우지 이념을 내세우지 않는다.”
―미국과 우리나라 차이가 큰데, 원전 수명을 정하는 기준이 있나. 또 원전은 실제로 얼마나 오랫동안 안전하게 가동할 수 있나.
“오래전에 지어진 고리 1호기는 처음에 30년을 허가받았는데, 보통 첫 번째에 40년을 허가해 준다. 그 기한이 됐다고 원전 수명이 다한 게 아니다. 자동차도 처음에 2년간은 검사 안 하고, 그 뒤로 해마다 검사하지 않나. 자동차 평균 수명이 10년 이상 되는데, 2년 지났으니 그만 운행해야 한다고 하는가. ‘원전이 몇 년 정도 지나면 더 못 쓴다’ 그런 기준 같은 건 원래 없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서 밥 먹고 하는 일이 원전 안전성 평가인데, 거기서 판단해서 계속 가동해도 된다면 가동하는 게 정상이다.”
―끝으로 탈원전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원자력공학을 공부하는 후학들에게 한 말씀 해달라.
“원자력은 필요악이 아니라 필요선(善)이다. 안전하지 않지만 발전비용이 싸니까 어쩔 수 없이 써야 한다고 얘기하면 잘못이다. 원전은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며, 에너지 안보에도 중요하다. 그동안 사람들이 너무 ‘원자력은 위험하다’고 세뇌당했던 것 같다. 원자력에너지는 신이 인류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원자력을 공부하는 분들은 인류, 그리고 우리나라의 풍요와 번영을 지키기 위해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긍지와 사명감을 가졌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학생이 적을 때 원자력을 공부하면 희소가치도 있지 않겠나(웃음). 탈원전이니 뭐니 해서 어려운 상황이지만,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인터뷰 = 김성훈 경제산업부 차장
대전 = tarant@munhwa.com
출처 =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62101032939176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