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1
핵분열 과정에서 생산되는 매우 귀중한 방사선이 있다. 바로 중성자라는 핵입자다. 내진성능 보강 공사로 최근 3년 남짓 가동이 정지돼 있어 연구자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는 하나로 연구용 원자로가 바로 중성자를 생산하는 시설이다.
중성자는 기초과학, 산업기술, 환경, 국방, 고고학, 원자력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매우 중요하게 기여한다. 이는 중성자가 물질 내부의 구조와 특성을 원자 또는 나노미터 단위에서 정밀하게 볼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간 중성자가 기여한 노벨상이 10여 개에 이른다는 점을 보면 기초과학 분야에서 중성자의 역할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고성능 배터리와 연료전지, 정보저장 소재, 항공기·자동차에 사용할 수 있는 고강도 초경량 소재, 스마트 약물 전달 물질 등 첨단산업 소재기술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극미량의 환경오염 물질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어 환경오염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핵심 정보를 제공한다. 이러한 중성자의 과학기술 및 산업적 기여가 미국, 독일, 영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들이 국가 차원에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냉중성자 시설을 포함한 대형 첨단 중성자 연구시설을 갖추고 있는 이유다.
하나로도 학계 및 연구계의 요구에 따라 2010년 냉중성자 연구시설(약 700억원 투자)을 완공해 세계적 수준의 첨단 중성자 연구시설의 면모를 갖췄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형 국가 과학기술 기반연구시설인 것이다. 하지만 2013년부터 정지 상태에 있어 기대했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 과학기술과 산업적 측면에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올 7월 세계 중성자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중성자산란학회(ICNS)가 대전에서 열렸다. 30여 개국에서 온 연구자 약 800명이 참석해 최신 중성자 이용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공유했다. 4년마다 열리는 국제학회를 대전에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로 중성자 연구시설의 우수성과 국제적인 위상 덕분이었다. 하지만 하나로가 가동 정지 상태에 있어 모든 참석자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언제 재가동에 들어가느냐?' '재가동되면 하나로에 와서 실험을 하고 싶다' 등의 질문과 희망사항을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조만간 재가동에 들어가길 희망한다는 말뿐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 말할 수 없었던 현실이 안타까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연구용 원자로는 원자력발전소와 비교해 열 출력이 100~1000배 정도 낮다. 따라서 통상 커다란 수조 속에 핵연료가 가둬진 매우 간단한 구조를 갖고 있으며, 물의 자연대류에 의해 쉽게 열을 제거한다. 워싱턴시 근처에 있는 미국 국립표준연구소의 연구용 원자로는 일반 주거지로부터 500m 거리에 있으며, 보스턴에 있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의 연구용 원자로는 교통량이 많은 일반도로 바로 옆에 설치돼 수십 년간 사용되고 있다. 연구용 원자로는 일반인들의 우려가 없을 만큼 매우 안전한 시설이라는 것이다. 물론 철저한 안전규정 준수는 필수다.
하나로 연구용 원자로의 내진 성능 보강공사가 마무리됐고, 이에 대한 규제기관 심사와 현장검사 결과 공사가 적절하게 수행됐다고 한다. 손꼽아 기다렸던 기쁜 소식이다. 이제 국가가 정한 절차와 규정에 따라 심의하고 문제가 없다면 하루라도 빨리 재가동에 들어가길 기대한다.
최근 탈핵단체를 중심으로 삼중수소 문제 등 과학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슈를 제기하며 하나로의 재가동을 반대하고 있다. 시민들과 적극적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은 안전성에 대한 불필요한 불안을 해소하는 데 꼭 필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과학적 근거가 취약한 내용을 침소봉대해 많은 예산과 노력이 투입된 국가의 중요 기반연구시설이 낭비되게 하거나, 불필요한 불안감을 조장하는 것은 건전한 시민활동이라 보기 어렵다. 이러한 분위기는 정부의 일방적인 에너지 전환 정책 추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과학적 사실이 불합리한 주장에 의해 매몰된다면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 논의와 판단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믿음을 높이고 더욱 발전적인 국가 미래를 준비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성민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