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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공지사항

[보도] 성풍현 교수, 38년 만에 마련된 중장기 로드맵..."소통 통해 마침표 찍을 껏"​

2016-06-13





38년 만에 마련된 중장기 로드맵..."소통 통해 마침표 찍을 껏"

조선일보 이위재 기자/ 입력 : 2016.06.08 03:07

 

고준위 방폐장 건설 특별 좌담회
현재 원전 내 수조에 저장 중 2019년부터 저장시설 포화… 고준위 방폐 처리장 건설 시급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고준위(高準位·high level) 방사성 폐기물 관리 기본계획' 38년을 미뤄왔던 대장정(大長程)에 마침표를 찍는 의의를 가진다. 그럼에도 남은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과연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부지를 어디로 정할지, 해당 지역 주민 동의는 이끌어낼 수 있는지, 계획한 시한 내에 마칠 수 있을지….

방사선 폐기물 처분장.jpg

경북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땅밑에 1.4㎞ 길이의 동굴을 뚫어 높이 50m, 지름 25m, 두께 1~1.6m 규모의 콘크리트 처분고 6개를 건설했다. 이 처분장에는 방사성 폐기물을 담은 드럼 10만개를 저장할 수 있다. / 뉴시스

이번 계획안에 담긴 내용을 다시 검토해보기 위해 본지는 전문가들을 모아 현실과 대안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한삼희 조선일보 논설위원이 사회를 보고,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박세문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성풍현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송하중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가 좌담을 진행했다.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에 대해 간단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좌담.jpg

고준위 방사성 핵폐기물 처리 문제 해법을 놓고 전문가들이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조선일보 편집국 회의실에서 좌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채희봉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박세문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한삼희 조선일보 논설위원(사회자), 성풍현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송하중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 / 이태경 기자

채희봉 이번 계획은 원전 가동 38년 만에 마련한 최초의 중장기 고준위 방폐물 안전관리 로드맵입니다. 작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위원회에서 절차와 틀에 관한 권고를 해주셨고, 이를 토대로 전문가 검토 과정을 거쳐서 발표한 것입니다. 공모를 통해 부지를 선정하고, 지하 연구시설, 중간 저장시설, 영구 처분시설을 한곳에 건설합니다. 소통과 부지 조사를 위해 꼭 필요한 기간을 12년으로 권고(4)보다 늘려 잡았으며 국제 공동 저장·처분시설을 확보하려는 노력도 대안으로 마련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정부 계획안을 어떻게 보십니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 시설 부지 선정 방안.jpg

박세문 사용후핵연료는 그 특성상 사회적 갈등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이 특히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원자력 관련 사업에서는 소통이 부족했습니다. 이번 계획에서는 소통을 강조하긴 했는데 기대해보겠습니다.

성풍현 작년 파리협정에 따라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BAU) 대비 37%를 줄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를 맞추려면 원자력발전이 중요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인데 2019년부터 저장시설이 포화되기 시작하면 발전소를 돌리는 데 치명적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기본계획이 늦게 나온 감이 있지만 다행입니다.

송하중 해결해야 할 문제인 건 분명한데 그 방법에 대해 이견이 많았습니다. 과거 정부는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다 곤욕을 치렀습니다. 20년 가까이 논란을 겪다가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중·저준위와 고준위를 분리해서 짓기로 결정한 과정을 보면서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는 걸 배운 셈입니다. 이번 기본계획은 40여년에 걸친 로드맵이라, 앞으로 하기 나름입니다. 사실 지금 내용 그대로 진행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컨센서스(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정책 결정 방향이 필요한데, 먼 길이 놓여 있습니다.

◇원전 저장시설 포화 시점 논란

―요즘 미세 먼지로 어수선합니다. 미세먼지 상당 부분이 석탄 화력발전소에서 나온다고 하니, 이를 개선하려면 원자력발전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원전을 계속 가동하려면 쓰고 난 핵연료를 처리하는 시설을 빨리 지어야 한다고 하는데 기존 저장소 포화 시점이 처음엔 2016년이라 그랬다가 그다음엔 2018, 또다시 2024년으로 계속 달라지고 있습니다.

박세문 당장 포화될 것처럼 얘기하다 이제는 당분간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니 의심이 생기죠. 정부가 제대로 설명해주지도 않고 급하다고 호소만 하다가 계속 말을 바꾸니 신뢰가 떨어지는 겁니다.

채희봉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더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을 찾으려다 보니 포화 시점에 다소 혼선을 준 점은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성풍현 저장시설을 확충하는 방법은 3가지 정도로 요약됩니다. 원전 내 저장 수조를 확대하거나, 사용후핵연료 다발을 더 조밀하게 쌓는 '조밀랙' 방식, 새로 원전을 짓고 그곳으로 옮기는 호기 간 이동 등이 있습니다. 대만에서는 3개 원전을 운영 중인데, 올해 2곳 저장시설이 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처분시설 건립이 지지부진하면서 다급한 처지가 됐습니다.

◇부지 선정에 따른 지역 지원은 어떻게

―방폐장 부지를 선정하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 불만과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기존 원전 저장소를 확충할 때도 이런 고민이 있습니까.

채희봉 이번 기본계획에 지역 지원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담지 않았습니다.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실제 부지 선정 과정에서 예상되는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독립기구로 '관리시설 전략위원회'를 두고 여기서 검토할 예정입니다. 지역을 지원하는 문제는 결국 그 지역이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게 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원을 많이 하느냐 적게 하느냐 단순한 액수 문제가 아닌, 주민들이 원전 관련 시설이 들어서고 나서 정말 살기 좋은 곳이 되었느냐를 느낄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기존 원전 지역에서 저장시설이 늘어날 때 추가 지원을 하느냐는 앞으로 검토해야 할 과제입니다.

성풍현 현재 원전 안에 있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은 발전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를 확충하는 건 간단한 게 아닙니다. 주민들 입장에선 없던 시설이 새로 들어선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보상을 새로 요구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송하중 이른바 '관련 시설'이냐 '관계 시설'이냐 논란인데 굉장히 헷갈립니다. 정부 기본계획에 따르면 월성원전과 한빛원전은 원전 내 단기 저장시설을 지어야 하는데 이때 얼마만큼 지원하든지, 아니면 현행법상 어렵다든지 결론을 내고 넘어가야 합니다.

성풍현 영덕·영광·기장 등 원전 지역 주민들 얘기를 들어보면 그동안 지원이 많았다고 하지만 피부로 잘 못 느낍니다. 반면 한수원은 보상할 것 다 했다는 입장인데 주민들이 체감하는 방식으로 보상금이 쓰이도록 해야 합니다.

송하중 정서적인 교류를 중시해야 합니다. 액수도 중요하지만 지역 주민들과 정서적인 교감이 아주 중요한데, 원자력계가 이 부분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지역 주민들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접촉하면서 정직하게 소통하고 인간적으로 교류해야 하는데, 주민들은 20~30년 전부터 살고 있는데 담당자들은 계속 새로운 사람이 오면 예전 스토리도 잘 모르니 믿음과 신뢰를 갖기 어려워집니다.

박세문 작년에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월성의 건식 저장시설은 '관계 시설'이라고 공식적인 입장을 정리한 바 있는데, 다른 원전은 어떨지 모를 일이죠.

구성인원.jpg

1 채희봉 실장. 2 성풍현 회장. 3 박세문 회장. 4 송하중 교수.

◇영국 원전은 소통에 각별히 신경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적잖은 나라에서 원전 정책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국은 분위기가 다르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박세문 영국 원전 문제를 다룰 때 사이언스 미디어 센터(SMC)라는 곳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SMC는 정부로부터 독립된 자유로운 조직인데 과학계 여러 단체가 출자해 만든 조직입니다. 미디어가 여기에 힘을 보탰습니다. 진보 성향 매체인 가디언 같은 곳도 현실을 일깨우고 과학적 정보를 제공하는 데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석탄을 많이 썼는데 환경문제가 불거지자 사용을 자제했고, 셰일 가스는 토양을 척박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주춤합니다. 결국 원자력에서 대안을 찾아가는데 SMC가 정부기관과 함께 초등학교 단계부터 원자력 사고나 방사선에 대한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킵니다. 그러다 보니 막연한 불안감보다는 과학적 지식 바탕 아래 사안을 바라보게 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을 때도 관리 부실 문제라고 인식하는 국민이 많았습니다. 가디언지 여론조사를 보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에도 원자력 수용성이 50%대를 기록했습니다.

◇법적인 절차 제정이 관건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미래 세대까지 관련된 국가적 과제인 만큼 해결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부지 선정은 차차차기 정권으로 넘어가는데 미루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관련 사안을 법률로 제정하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을 겁니다.

채희봉 기본계획을 발표했으니 공청회를 거쳐 총리 주재 원자력진흥위원회를 통해 내용을 확정하면 법률을 제정하는 절차를 밟게 됩니다. 올해 고준위 방폐물 관리 절차에 관한 법률'(가칭)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입니다. 차차기 정부로 부지 선정을 이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난 공론화위원회에서는 2020년까지 정한다더니 뒤로 미뤘냐고 지적하는 분들도 있고, 다른 나라는 20~30년에 걸쳐 했는데 12년 만에 어떻게 하겠냐는 분들도 있습니다. 과거 경험으로 봤을 때 시한을 정해놓고 쫓기듯이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정당성을 확보하는 게 중요합니다. 부지 선정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의견 수렴과 조사 과정을 투명하게 펼치며 소통을 강조하면서 민주적인 절차가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송하중 20대 국회에서 입법해야 하는데 새로 구성되는 의원들에게 정보를 주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객관적인 정보로 받아들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합니다. 또 법이 만들어지더라도 다시 대선이 닥치는데 다음 정부에서 또 새로운 판이 짜일 수도 있습니다. 여야가 공감하는 법이 만들어지면 그래도 절차는 나름대로 흘러가겠지만 억지로 밀어붙이다 반대하는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면 12년도 짧을 수 있습니다.

◇국제 공동 처분장도 검토

―국내뿐 아니라 해외 공동 저장·처분시설 확보 노력도 병행한다고 했는데, 호주를 염두에 둔 내용 같습니다.

성풍현 국내에 최종 처분 부지를 만드는 것과 해외에 두는 걸 동시에 고려하겠다는 얘기인데 운송 문제 등 기술적인 문제는 이미 검증이 되었기 때문에 충분히 해볼 만합니다.

채희봉 안전성, 경제성, 수용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국내에는 희망 지역이 없는데, 상대국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오고 비용도 합리적 수준이라면 이 방식도 종합적으로 의견을 모아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그때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합니다.

성풍현 1980년대 중국에서 비슷한 제안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 유학 시절 지도교수님 말씀에 따르면 고비사막에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마음이 있다면서 어마어마하게 높은 금액을 요구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산됐는데, 지금은 또 상황이 달라졌으니 호주가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하지는 않겠죠.

채희봉 남호주 정부에서도 여러 전제를 붙였습니다. 연방법에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주민 수용성, 정치적 가능성 등이 풀린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일단 호주에서 어떤 식으로든 방향이 정해져야 검토할 수 있는 상황이라 조심스럽습니다.

◇막대한 관리 비용과 부지 선정은 어떻게

―관리 비용이 53조원이라고 나와 있는데, 지금처럼 한수원에서 기금 적립해서 충분히 조달 가능한지도 궁금합니다.

채희봉 관련 전문가들이 모여 추산한 비용이 53조원입니다. 현재 계획대로 운영 기간 동안 가동된다는 전제하에 발생하는 비용을 원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현 시점에서 소요 예산 등이 다 반영되어 있는데, 2년마다 적정성을 확인해서 조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부지 선정을 배제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밝혔는데, 그렇다면 전국이 다 후보라는 말씀인가요.

채희봉 배제 방식은 시간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 적합하지 않은 부지를 빼고 공모하는 방식인데, 그동안 축적된 자료가 많기 때문에, 어려운 방식은 아닙니다.

박세문 중·저준위 부지 선정 당시에 사용후핵연료 관련 내용까지 다 지질조사를 했기 때문에 관련 자료가 상당히 많습니다. 배제 방식이라는 용어 때문에 그런데, 적합한 부지를 선정한다, 부지 조사 대상 지역 중에 공모한다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송하중 공론화위원회에 1년 반 정도 참여했는데, 어떤 위원회보다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이견으로 덜컹거리고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만 정부가 1년 반 동안 민간 조직을 만들어서 알아서 얘기하도록 하고 개입하지 않았다는 점은 과거에 비해 커다란 진전입니다. 이렇게 민간들이 갑론을박하면서 권고안이 나왔고 정부가 그걸 받아들여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 몇 년 동안 민간 쪽에서 해야 할 작업들이 있습니다. 그때도 지금 같은 태도로 일관한다면 또 한 단계를 밟아나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다음 정부에도 객관적 기록이 될 겁니다.

박세문 언론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선정적인 보도를 자제하고 국가적 사업인 만큼 객관적 정보 제공에 신경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장기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교육계도 관여해서 미래 세대들도 어렸을 때부터 교육이 되고, 온 국민이 함께 교감할 수 있는 정보 제공 체계가 갖춰졌으면 좋겠습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사용후핵연료)

원전에서 쓰는 핵연료는 원자로 속에서 핵분열을 일으킨다. 이때 나오는 열을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것. 그런데 이 핵연료는 일정 기간 원자로 안에서 타다 보면 더 이상 충분한 열을 생산하지 못한다. 이때 새 연료로 교체한다. 사용후핵연료라도 일정 기간 높은 열과 방사선을 방출하기 때문에 차폐된 상태에서 다뤄야 한다.